군 제80연대(현 이천동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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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2일 대구미군정지휘관 존스 대위(오른쪽)가 일본군 제80연대(현 이천동 미군부대)를 찾아 연대장(가운데)에게 무장해제를 선언하고 있다.
왼쪽은 통역을 맡은 평론가 박기준씨.
이 사진들은 광복 30년을 맞은 1975년 8월 1945년 10월 1일.
ⓒ 윤성효 위헌 결정이 난미군정포고령 제2호 위반(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진 뒤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군인·경찰에 의해 학살되었던 민간인에 대한 형사사건 재심 절차가 진행되어 관심을.
80년은 휘발성 이벤트보다는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을 기억하고 작은 것부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초기미군정경찰 수뇌부 모습 ⓒ 임영태 그런 차원에서 '경찰의 날' 변경을 제안한다.
현재 경찰의 날은 1945년 10월 21일 미군정청 안에.
광복회는 경찰의 날을 현행미군정경무국 창설일인 10월 21일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창설일인 4월 25일로 변경하는 내용의 ‘경찰의 날 기념일 변경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지지한다고 12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 등 국회의원 76명은 이날 해당.
1945년 8월 15일(수요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우리나라가 36년의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날이다.
국토의 분단과 3년여에 걸친미군정통치.
1948년 8월 15일(일요일) 독립국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광복절은 이 두 날을 함께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처절한 독립 투쟁에도 일제의 결정적 패망은 '강대국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8선을 기준으로 이남은미군정이, 이북은 소군정이 점령했다.
9월 8일, 하지 중장 휘하의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다.
10월 1일 미군 선견분대가 청주에 진주했다.
10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남로당 박헌영은 '2.
미군정과의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선언이었다.
1948년 5월 초 남로당 소속의 무장대들이 군경에 검거되었다.
그들이 만든 사제 수류탄을 들어보이는 경찰관.
희망을 안겨준 대표적인 사건”이라며 “보스턴 마라톤은 1947년 ‘팀 손기정’의 참가 덕에 국제 마라톤으로 발전했다.
당시 한국은미군정체제로, 나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손기정이 보스턴 마라톤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출전도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부록 논문에 실린 1946년 조미공동회담 전후 기록은 뼈아프다.
대구의 이른바 ‘10월 폭동’에 대처하기 위해 열린 회담이었고,미군정의 대책은 비극적인 결말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사태의 발단이었던 친일경찰들은 우익 테러 청년단체와 결탁하고 미곡을 강탈.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 12월19일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했다.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재산이 남아 있었다.
미군정은 귀속재산 관리인과 임차인에게 우선적으로 불하받을 권리를 주는 '연고자 우선주의' 방식을 택했고, 이런 기조는 귀속재산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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